마음을 치료하는 한의사

나병진 원장의 한의학 이야기

 

도대체 ‘기(氣)’란 무엇입니까?

 

다운타운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다 보니 한국인이 아닌 환자의 비율이 한국인보다 높습니다. 침을 처음 맞는 캐나다인들은 질문이 참 많습니다. 그 중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아무래도 ‘침이 도대체 어떻게 효과가 있는 것인가?’ 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기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입니다. 침의 작용 기전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라 제가 다시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기란 무엇인가?’ 에 대해 납득할 만한 글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 한번은 제 생각을 추려 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지난 15년동안 책으로 공부하고 임상에서 환자를 치료하며 확인할 수 있었던 기에 대한 제 고민의 정리가 되는 셈입니다.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기에 대한 이해는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 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이해 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서양과학에서 ‘원자’ 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동양과학에서 ‘기’ 라는 개념이 왜 출현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학자들의 고민과 고대 동아시아 철학/과학자들의 논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먼저 고대 그리스 즉 서양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학자들이 던졌던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질문은 ‘자연은,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였습니다. 그들에게 우주는 비어있는 공간에 물체가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 물체를 쪼개고 쪼개면 남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물체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였습니다. 탈레스는 물이라고 대답하였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4원소설로 정립이 됩니다. 우주의 기본인 네 가지 물체가 흙, 물, 불, 공기라는 것이었고, 이 이론은 중세까지 이어졌습니다. 학교에서 서양 과학을 기본으로 공부하는 우리는 이러한 문제 설정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물체를 쪼개고 쪼개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마지막 남은 그 물체가 바로 우주를 이루는 기본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해서 발견된 것이 바로 원자이고 핵이고 소립자라는 것이 근대과학의 역사를 배워온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서양의 철학/과학자들이 유레카를 외치며 가장 기본이 되는 물체를 찾고 있었을 때 동양의 철학/과학자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요? 당연하게도 동양의 우주관은 서양의 우주관과는 달랐습니다. 일단 동양에서는 우주를 비어있는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고 여겼습니다. 우주의 물체는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뭉쳐져서 생성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움직임이 줄어들고 뭉쳐지면 물체가 되고 움직임이 늘어나고 흘어지게 되면 물체가 소멸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우주는 고정된 어떤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 아니 변화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물체’ 를 쪼개고 쪼개면 남게 되는 물체가 무엇인지 궁금해했던 서양철학/과학자들 처럼 동양철학/과학자들은 ‘변화’ 를 쪼개고 쪼개면 무엇이 남을까? 즉 ‘변화의 기본 법칙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으로 그들의 고민을 압축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 책으로도 남겼습니다. 동양철학의 가장 오랜 고전, 공자가 가죽 끈을 세번 이나 끊어지도록 탐독했다는 책 ‘易(바뀔 역)經(경전 경)’, 즉 ‘바뀜, 변화’ 에 대한 경전입니다.

 

아마도 동양철학/과학자들이 ‘변화의 기본 법칙’ 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는 사실은 많은 분들께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대서양과학의 승리 이후 동양 과학은 한의학 정도로만 살아남았고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 힘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겨우 동양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축소 되었고 그 마저도 학교에서 배우기는 힘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우주관이 얼마나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의 의식을 좌우하고 있는지 이 칼럼 시리즈가 끝날 때 쯤이면 알아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면, ’자연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나?’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 서양의 우주관과 ‘자연 변화의 법칙은 무엇인가?’ 로 연결된 동양 우주관의 차이는 이후 아주 광범위한 영역에서 차이를 가져옵니다. 다음 칼럼에는 이 차이에 관하여 자연과학과 의학에 한정해서 논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