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陰陽)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에는 수만 가지 답이 존재합니다.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나름의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질문에는 가장 납득할 만한 답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합니다. 이 글은 그렇게 찾아가는 길의 과정 어디쯤에 제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동양과 서양, 서로 다른 질문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던졌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나?'였던 것 같습니다. 탈레스는 세상의 근원이 물이라 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 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흙·물·불·공기 네 원소로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4원소설). 이 질문은 근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마지막 남은 그 물질이 바로 우주를 이루는 기본 구성요소가 아닐까?"로 바뀌어 갔고, 그렇게 해서 발견된 것이 원자, 핵, 소립자입니다.
그렇다면 서양의 철학자들이 유레카를 외치며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을 찾고 있었을 때, 동양의 철학자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요? 공자가 가죽끈을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탐독했다는 책, 역경(易經) — 易은 곧 '변화(變化)'라는 뜻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대원칙 하에 그 변화의 법칙을 찾고자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는 이미 고등학교에서 원자, 중성자, 칼슘, 칼륨, 나트륨, 주기율표를 외웠지만 '변화의 법칙'에 대해서는 무엇을 배웠을까요? 한의사로서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배워왔습니다 — 음양, 삼음삼양, 팔괘, 오행 등등.
변화의 최소단위를 찾아서
서양이 물질의 최소단위로 흙·불·물·공기를 찾았을 때, 동양은 변화의 최소단위로 무엇을 찾았을까요? 변화라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변화의 가장 기본은 '움직이다'와 '정지하다'가 아닐까요. 여기서 핵심적인 발견이 있습니다: 물질의 최소단위에는 짝이 없지만, 변화의 최소단위에는 대부분 짝이 필요합니다 — 정지하다↔움직이다, 모이다↔흩어지다, 수렴하다↔발산하다, 압축되다↔팽창하다, 감쇄하다↔증폭하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원문: "故積陽爲天, 積陰爲地. 陰靜陽躁, 陽生陰長, 陽殺陰藏. 陽化氣, 陰成形." — 양이 쌓이면 하늘이 되고, 음이 쌓이면 땅이 됩니다. 음은 정적이고 양은 동적이며, 양이 생하면 음이 자라고 양이 쇠하면 음도 쇠합니다. 양은 기로 변하고 음은 형체가 됩니다. (황제내경 음양응상대론)
동영상으로 이해하는 음양
처음 한의학을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십여 년의 서양 과학교육으로 인한 물질 중심의 사고관이었습니다. 동양철학이 변화의 법칙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움직임을 물질로 설명해내는 것은 극히 모순적입니다. "뛰는 행위"를 국어사전으로 정의해도 "발을 몹시 재게 움직여 빨리 나아가다"처럼 결국 동사적 표현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이나 명사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표현이 가능하지만, 변화나 동사는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방법이 하나 있다면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빅뱅 이후 우주 탄생 과정을 떠올려 봅시다. 우주 먼지 상태에서 일정 방향으로 먼지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1단계), 그 흐름 속에서 어떤 모양이 나타나며 띠가 보이기 시작하고(2단계), 어떤 부분은 뭉쳐 중력을 가지게 되어 주변 물질을 끌어들이며 점점 커지고, 먼지가 사라진 주변은 맑아집니다(3단계). 이렇게 읽으면 황제내경의 구절이 살아납니다: 積陽爲天(적양위천)은 움직임이 가속되는 것, 積陰爲地(적음위지)는 멈추고 뭉치는 것, 陰靜陽躁(음정양조)는 바로 이 정의 자체, 陽生陰長·陽殺陰藏은 흐름이 가속화되면 뭉치는 것도 커지고 흐름이 늦춰지면 뭉치는 것도 작아진다는 뜻, 陽化氣·陰成形은 움직이고 흩어지면 흐름(氣)이 만들어지고 뭉치면 형태가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촛불의 비유를 넘어서
저는 음과 양을 환자들에게 설명할 때 쉽게 '음은 물질이고 양은 에너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줍니다. 촛불을 비유하면 몸통은 음이고 불꽃은 양이라고요. 사실 그것이 음과 양에 대한 제 이해의 첫 단계였습니다. 한의학의 용어는 대부분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즉 변화를 설명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제가 이해한 음양이 음양의 일부분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陽 = 熱 = 淸 = 躁라고 방향성 없이 나열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다. 움직이고, 흩어지고, 팽창하기 때문에 뜨겁고, 맑고, 조급해지는 것이다.
세 가지 핵심 원칙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으로 바꾸어야 했던 인식의 전환 세 가지를 정리해봅니다. 첫째, 물질 중심의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오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처럼 세상이 목화토금수 다섯 가지 물질로 구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 형태를 목화토금수로 형상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한의학은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는 자연과 인체의 변화와 흐름에 대한 학문입니다. 둘째, 변화는 명사로 설명하기 힘드니 동사로 생각하고 동영상을 떠올려야 합니다. 한의학 용어를 명사로만 사고하면 훗날 다룰 '태양이 한수(寒水)인 이유' 같은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음양은 어떠한 것(물질, 명사)이기 전에 어떠한 변화(변화, 동사)입니다. 셋째, 음(陰)은 정지하고 모이고 수렴하고 압축하고 감쇄하는 변화를, 양(陽)은 움직이고 흩어지고 발산하고 팽창하고 증폭하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참고로, 이 글에서 논하고 있는 대부분의 개념과 접근 방식은 민족의학신문에 '물리의 의학'을 연재하시며 한의학에 대한 물리학적 접근과 해석을 시도하고 계신 장혜정 한의사님의 블로그를 보고 제 나름대로 소화시킨 것임을 밝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