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위장 질환이 있는데 고칠 수 있느냐고 전화 문의를 주셨던 필립(가명) 님이 진료실을 찾아오셨습니다. 소화불량이나 속쓰림 정도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일주일째 구토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은 물론 물만 마셔도 토해서 벌써 몸무게가 5kg 이상 빠졌다고 했습니다. 평소 위에 전혀 이상이 없었고 잘 먹고 잘 자던 건장한 20대 남성이었습니다.
일주일간 물조차 넘기지 못한 환자
어떻게 구토가 시작되었는지 물으니, 열이 나고 목이 좀 아프더니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고 곧 토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물만 먹어도 토가 나왔습니다. 응급실에 가서 피검사도 하고 수액 주사도 맞았지만 구토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안 가본 곳은 한의원(Acupuncture Clinic)밖에 없는 것 같아 저희 한의원에 전화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이나 밥은커녕 물조차 제대로 못 먹은 환자, 양방 의사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하고 수액 주사로 겨우 탈수를 막고 있던 환자는 절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표정은 지쳐 있었고, 한의원에서 이런 걸 고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증상은 심각했지만 저는 환자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000년 한의학 역사에서 이 증상은 아주 유명한 증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의 경전으로 여겨지는 ‘상한론(傷寒論)’의 74번째 문장이 바로 이 증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渴欲飮水 水入則吐者 名曰水逆 五苓散主之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고자 하나, 물이 들어가면 토하는 것을 수역(水逆)이라 한다. 오령산으로 주로 치료한다.”
상한론이 말하는 ‘수역(水逆)’
감기나 전염병을 앓게 되면 땀을 심하게 흘리거나 설사, 구토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한론’에는 그런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빠짐없이 적혀 있는데, 이 환자 역시 가벼운 감기 증상에서 시작되었으니 ‘상한론’을 참고하는 것이 맞는 접근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환자에게 “감기 초기에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습니까?”라고 물으니, 토하기 시작할 때 땀을 정말 많이 흘렸다고 했습니다.
몸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정리하면, 이 환자는 열이 나고 목이 좀 아픈 후 땀을 심하게 흘리며 구토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에는 목은 마르지만 물을 마시면 구토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생리학적으로 보면, 감기가 진행되는 동안 땀과 구토를 심하게 한 것이 체내 전해질(칼륨, 나트륨 등)의 불균형을 초래했습니다. 전해질 불균형은 여러 문제를 일으키지만, 이 환자의 경우에는 위로 들어온 물을 흡수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쉽게 그려보면: 위에 물이 이미 가득 차 있는데 또 물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토하게 됩니다. 물이 위에는 고여 있지만 혈관 안으로는 흡수되지 않으니 목은 계속 마릅니다. 그래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 다시 토하는, 언뜻 기묘해 보이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치료법 — 오령산이 하는 일
‘상한론’이 치료제로 제시하는 오령산(五苓散)은 복령, 백출, 저령, 택사, 계지라는 다섯 가지 약재로 이루어진 처방입니다. 복령과 백출은 위장관의 수분을 혈관으로 끌어와 흡수시키는 효능이 있고, 저령과 택사는 그 수분을 다시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계지는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이 과정을 돕습니다. 결국 위에 고여 있는 물을 혈관으로 흡수시켜 소변으로 잘 배출시키면 구토가 멎는다는 원리입니다.
처방 방법절박했던 환자에게는 간단한 침 치료와 함께 오령산을 조금씩 입에 축여 먹도록 했습니다. 물을 절대 벌컥벌컥 마시지 말고, 같은 방식으로 조금씩 입에 축여 먹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과
다음 날에는 벌써 물을 마실 수 있었고, 그다음 날에는 죽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혹시 몰라 5일 정도 후로 재진 예약을 잡아두었는데,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 더 이상 치료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전화를 받고 치료를 종료했습니다. 복잡다단한 감기 후유증에 한의학의 효과는 놀랍도록 빠른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