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의 백인 여성이 한의원을 방문했습니다. 예전에 딸이 한의원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치료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공황장애가 있는데 그때 와서 보니 침과 한약으로 정신과 질환의 치료도 가능한 것 같아서 한번 시간을 내었다고 했습니다. 어릴 적 성장 과정에서 겪은 문제가 아직도 자꾸 생각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힘들며, 때로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이 나면서 불안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증상이 있으면 당연히 수면에도 문제가 따라오게 되어 있어 물어보니, 잠들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전형적인 범불안장애(GAD, Generalized Anxiety Disorder) 증상이었습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이런 신경정신과 질환을 이해하려면 먼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라는 인체 생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단어가 좀 낯설 수도 있지만 결코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이해는 쉽습니다. 여러분 앞에 굶주리고 포악한 불곰이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살려면 싸우거나 도망가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몸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일단 도망가려면 근육의 혈액 공급을 늘려야 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하니까요. 심장 박동은 당연히 올라갑니다. 한정된 혈액이 근육으로 몰리면 상대적으로 위장관에는 혈액 공급이 줄어듭니다.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배가 고프면 되겠습니까? 소화관 운동은 당연히 억제됩니다. 잠이 올까요? 뛰다가 졸면 큰일 납니다. 잠은 절대 안 옵니다. 이것이 바로 교감신경의 작용입니다.
교감신경의 작용을 이해했다면 부교감신경을 파악하는 일은 훨씬 쉽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불곰에게서 도망쳐 살아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제 온몸의 긴장이 풀리겠지요. 우리 몸은 그런 긴장 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배가 고파오고(소화관 운동의 촉진), 심장박동도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잠도 다시 자야지요. 이렇게 흥분된 우리 몸을 다시 이완시켜주는 것이 바로 부교감신경의 작용입니다.
공황장애는 교감신경의 ‘오작동’
그런데 불곰을 만나서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것과 공황장애가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요? 공황장애의 증상을 한번 자세히 살펴보지요. 가슴이 두근거린다(심장박동 촉진), 소화가 잘 안된다(소화관 운동 억제), 잠이 오지 않는다(동공의 확장) 등등 대부분의 증상이 바로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작동되고 있는 상태와 똑같습니다.
공황장애는 교감신경의 오작동이라고 이해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불곰을 만나지 않았는데도 우리 몸이 불곰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2,000년 전 한의사들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2,000년 전의 한의사들은 이런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작용을 이해하고 공황장애를 치료했을까요? 물론입니다.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치료 약재까지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잠을 못 이룰 때는 ‘황련’이라는 약재를,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지며 안절부절못할 때는 ‘치자’를, 가슴이 두근거리고 근육이 떨리며 머리가 어지러울 때는 ‘복령’을 쓰라고, 이미 2,000년 전에 쓰인 ‘상한론’이라는 책에 적혀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인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어떻게’, ‘왜’ 낫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러이러한 증상에 이러저러한 방제와 약을 쓰라는 이야기만 존재합니다. 이제 현대 과학의 발달로 그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치료 경과
처음에 말씀드렸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여전히 불안에 시달리던 이 환자는 ‘황련’을 주약으로 하는 처방으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였습니다. 한 달 정도의 치료로 불안 증세와 수면이 현저히 좋아져서 환자가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어릴 적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신체적·심리적 상황을 조절 가능한 지점까지 회복시켰다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거기까지가 한의사인 저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