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불면 등의 신경정신과 증상을 가지고 계신 분들 중에는 유독 ‘속이 쓰리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대로 속이 쓰려서 한의원을 찾았으나 진료하다 보면 스트레스와 불면이 함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위장관 질환과 신경정신과 질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속이 쓰리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트림을 자주 하고 신물이 넘어온다고도 이야기하십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지요.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있기도 한데, 쥐어짜는 느낌이 들거나 타는 듯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위산이 식도를 역류하며 나타나는 증상인데, 사실 심장에 의한 통증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이 쓰린 증상을 영어로 ‘Heartburn’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왜 스트레스가 속을 쓰리게 할까 — 혈액의 재분배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러 설명이 있을 수 있지만,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신체의 반응 양태, 특히 혈액의 순환과 편중을 통한 설명이 가장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 상황에 오래 또는 과도하게 노출되면 격렬하게 저항하게 됩니다. 불곰이 우리 앞에 나타나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됩니다. 살려면 싸우거나 도망가야 합니다. 도망가려면 근육의 혈액 공급을 늘려야 하고, 심장 출력도 늘려야 하니 심장으로의 혈류량이 늘어납니다. 한정된 혈액이 근육이나 심장으로 몰리면 상대적으로 위장관에는 혈액 공급이 줄어듭니다.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배가 고프면 되겠습니까? 소화관 운동은 당연히 억제됩니다. 잠이 올까요? 뛰다가 졸면 큰일 납니다. 잠은 절대 안 옵니다.
심장과 근육으로 혈액이 몰리는 만큼, 위장관에는 혈액 순환량이 부족해집니다.
정리하자면 심장과 근육으로는 혈액이 몰리고, 그만큼 위장관에는 혈액 순환량이 부족해진다는 것입니다. 위장관에 혈액 공급이 안 되면 역류성 식도염,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기능성 위장장애 등 각종 위 질환이 생겨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소화가 안 되고, 더부룩하고, 속 쓰리고, 찌르듯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설사, 때로는 변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상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Judy: 흥분과 열증
Judy(가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잠이 들지 못해 한의원을 찾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속이 무척 쓰리다고 했습니다. 이런 흥분 상태, 위장관의 염증 상태를 한의학에서는 열증이라고 표현하는데, 실제 체온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혈액이 몰리는 곳이 마치 열을 받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혀를 보면 이 또한 더 붉은 색을 띱니다. 맥도 일반 사람이 1분에 72회 정도 뛴다면 Judy는 85회 정도를 뛰었습니다. 대변을 잘 보지 못하는 변비 경향이었습니다.
Helen: 열증과 한증이 함께
Judy처럼 순수하게 흥분 상태와 열증의 상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Helen(가명)처럼 추위를 타는데 속은 열로 가득 차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Helen도 Judy처럼 잠을 못 자고 속이 쓰려 했습니다. 하지만 Helen은 항상 추워하고 대변도 설사 경향이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추위를 타고 설사를 하면 주로 한증이라고 보기 때문에, Helen의 경우는 열증과 한증이 함께 있는 셈입니다.
처방 — 황련이 핵심입니다
결과적으로 Judy와 Helen 모두 ‘황련’이라는 약재가 들어가 있는 방제로 치료했습니다. 황련은 중국에서 ‘인생이 황련처럼 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맛이 아주 쓴 한약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만은 아주 탁월해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흥분 상태의 환자가 속이 쓰리거나 소화가 안 된다는 위장의 염증 증상을 호소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약재입니다. 황련이 쓰이는 환자분들은 대부분 외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고, 말을 아주 빨리 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Judy는 대황이라는 변비 치료약과 함께 처방하여 열증과 염증을 함께 제어했고, Helen은 생강을 함께 처방하여 황련으로는 열증을, 생강으로는 한증을 다스려 주었습니다. 두 환자 모두 불면과 속쓰림을 무난히 함께 해결했습니다.
위장관 질환은 양방약을 먹어도 치료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특히 스트레스와 결부되어 있는 증상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는 몸과 정신을 하나로 보며 여러 증상을 연계하여 사고하는 한의학 치료를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의학의 장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