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낭 제거 수술을 앞둔 환자가 통증이 너무 심해 그때까지 참기 힘들다며 한의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담낭염이 있어 소화를 도와주는 담즙 분비가 원활하지 못하니 속도 더부룩하고 계속 체한 느낌이 있다고 했습니다. 간담계 질환에는 ‘시호’라는 약재가 많이 쓰이는데, 이 환자도 수술 받기 전까지 침 치료와 시호가 들어있는 한약으로 통증을 다스렸습니다.
수술은 잘 됐다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요
그런데 문제는 수술 이후였습니다. 수술을 받고 났는데 갑자기 너무 불안하고 밤에 잠이 안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이 잘되었으니 조금 기다려보라는 말만 했지만, 환자 본인은 그냥 이유 없이 불안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자기 같은 사람이 꽤 있다며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이 환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환자에게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신경정신과적 증상을 치료하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상황입니다. 다른 장부의 제거 수술 이후에도 불안, 공황장애, 불면 같은 정신적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유독 담낭 제거 수술 이후에는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이 환자 이전에도 몇 번이나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를 치료한 기억이 있습니다.
담(膽)과 마음 — 우리말 속에 남아있는 오래된 관찰
의학을 몰라도 합리적으로 고민하다 보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가설은 이런 것입니다. ‘담과 담즙 분비가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니 우리말에는 ‘담(쓸개)’에 대한 여러 표현이 있습니다. “너 진짜 잘 놀란다. 왜 그렇게 담이 작니?”, “이런 쓸개빠진 놈”, “담력을 길러야 한다” 등등. 적어도 우리말에 이미 녹아있는 ‘담’의 정신적 의미는 용기, 결단력, 싸우려는 의지입니다.
우리말에 이미 녹아있는 ‘담’의 정신적 의미는 용기, 결단력, 싸우려는 의지입니다.
여러 관찰을 통해 한의사들은 아주 오래전에 담과 정신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고, 이런 의학적 발견과 지식이 우리말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담낭 제거 수술 이후에도 별다른 심리적 증상 없이 일상으로 쉽게 복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섣부른 결론은 금물입니다. 임상의로서 저는 ‘간담계 질환으로 발생하는 소화 문제는 불안, 공황, 불면을 야기하기도 한다’ 정도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인을 몰라도 치료는 가능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치료입니다.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질병은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원인을 파악해 그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는 접근은 무척 타당해 보이지만, 실은 큰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우리 인체는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검사를 해도 원인을 밝혀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인체는 자기방어능력과 자기회복능력을 가진 유기체라서, 원인을 알지 못해도 치료가 가능합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증상을 중심으로 치료해 가다 보면, 우리 몸이 스스로 균형을 잡아 병의 근원을 함께 치료해 내기도 합니다.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는데 환자는 통증을 느끼고, 신체적으로는 모두 정상인데 정신적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원인을 알지 못한다고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치료 경과
담낭 제거 수술 후 불안과 불면을 겪던 이 환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담즙 분비와 위장의 소화 기능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만큼은 분명했기에, 죽여·반하 등의 약재를 써서 담과 위장의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한약을 지어드렸습니다. 침도 담경락과 위경락의 혈자리를 중심으로 치료했습니다.
복약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환자는 소화가 편해지기 시작했고, 불안도 훨씬 줄었습니다. 한 달 정도 치료한 후에는 불면증까지 모두 나아졌습니다. 삼겹살처럼 기름진 음식은 아직 무리였지만, 대부분의 음식은 무난히 소화해냈습니다.
담(膽), ‘결단의 장부’
한의학 원전에서는 담을 ‘결단의 장부’라고 표현합니다. 판단력과 결정력을 주관하는 장부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겁이 많고 우유부단하고 잘 놀라는 환자는 담경락을 집중적으로 치료하면 좋은 결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담낭 제거 수술 이후 뭔가를 결정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저는 환자들에게 무술을 한번 배워보라고 조언합니다. 무언가를 때려 보라는 것입니다. 꼭 사람을 때릴 필요는 없고, 샌드백 같은 것을 두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싸울 수 있는 의지, 싸우려는 힘이 강해지면 불안함과 우유부단함은 제어됩니다. ‘담력’이 길러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