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료하는 한의사

나병진 원장의 한의학 이야기

 

선생님, 제가 화병에 걸린건가요?

 

“선생님, 제가 화병에 걸린건가요?”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이 종종 제게 물어오는 질문입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화병’은 낯설지 않은 정신질환 입니다. 억울함과 분함의 감정이 오래도록 풀리지 않고 지속되면 결국은 가슴이 답답해 오고, 열감이 치솟고, 명치가 막힌듯한 느낌이 드는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기 시작합니다. 입이 마르고 두통이 오며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깨기 시작하지요.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화가 치밀며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초라하거나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하지요.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 Hwabyung으로 정식 등록 되어 있을만큼 한국의 문화관련 증후군으로 분류 되어있습니다.

 

화병이 한국인에게만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 한국 문화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된 희생때문에 특히 한국여성에게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여러 민족을 대상으로 치료를 하다보니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보다는 ‘여성’이라는 성별적 특징이 화병의 주된 원인으로 여겨집니다. 캐나다 백인 여성들도 남편과의 불화때문에 똑같은 증상을 자주 호소하곤 합니다.  특히 갱년기 즈음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아주 쉽게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게 되지요.

 

몇년전 치료했던 Rose(가명)도 그런 사례 중 하나였습니다.  Rose는 남편과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몇번이나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아이들 생각에 다시 생각을 고치곤 했답니다. 그러던 중 어렵게 어렵게 들곤 했던 잠이 점점더 문제가 심각해지고 가슴이 쪼이는 듯 하며 자다 깨면 온몸이 땀에 젖어 있는 날이 잦아 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심장에 문제가 생긴줄 알고 가정의를 통해 이것 저것 다 검사를 해봤는데 심장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합니다. 가정의는 심리적인 문제이니 상담을 권하였고 이런 저런 치료를 전전하던 중에 저희 한의원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Rose의 경우는 소화기의 문제는 나타나지 않아 비교적 치료가 쉬운 사례 였습니다. 이럴때는 색깔이 곱고 예뻐서 천연 색소로 옷감을 물들이거나 전을 부칠때 사용하는 ‘치자’라는 약재를 주로 쓰게 됩니다. 민간요법으로 관절이 삐면 밀가루와 반죽해서 환부에 붙이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에게는 익숙한 약재이기도 하지요. 노란색 색소에 들어있는 ‘크록신’, ‘크로세틴’이 혈관의 울혈과 충혈을 완화시켜 주고 또한 담즙 분비를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한의학적으로 울화를 꺼주거나 해소해준다는 말은 서양의학적으로는 혈액의 순환을 도와주고 담즙 분비를 촉진시킨다는 것과 비슷하게 바꿔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신체적 증상을 치료하는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지 않았으나 남편과의 불화가 계속되는 한 심리적 증상을 없애는 것은 힘들어 보였습니다. 심리 질환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환자의 몫이 남아 있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잊혀지지 않는 화병 환자는 올해 잠시 밴쿠버에 들려 ‘세월호 유가족 면담회’에 참여하셨던 유가족 분이었습니다. 이미 잠을 잘 못 잔지는 오래되었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화병의 증상은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맥을 짚어본 저도, 본인의 증상을 담담하게 말하는 유가족 분도 지금은 결코 치료가 될 수 없다는 사실만 눈빛으로 나누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도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 한국에서는 세월호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공영방송의 중계도 없이 국회도 아닌 YWCA 건물에서 언론의 외면속에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청문회 시작도 전에 예산은 깎이었고 증인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저 부모들의 화병은 이제 더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해 보입니다. 심리 질환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환자의 몫이 남아 있게 마련이지만 유가족분들을 위한 의사의 몫은 과연 무엇일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직하게 답변해야 할 정부와 두눈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 보아야할 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