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료하는 한의사

나병진 원장의 한의학 이야기

 

밴쿠버의 잠 못 드는 밤-불면증 이야기 2

 

지난 칼럼에서 불면증의 유형에는 교감 신경 주도형 불면과 부교감 신경 주도형 불면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교감 신경 주도형 불면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먼저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이라는 인체 생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단어가 좀 낯설 수도 있지만 결코 어려운 개념은 아닙니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해 보면 이해는 쉽습니다. 자 이제 여러분 앞에 굶주리고 포악한 불곰이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살려면 싸우거나 도망가야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일단 도망가려면 근육의 혈액공급을 늘려야겠지요.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하니까요. 심장 박동은 당연히 올라갑니다. 한정된 혈액이 근육으로 몰리면 상대적으로 위장관에는 혈액의 공급이 줄어들겠지요.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배가 고프면 되겠습니까? 소화관 운동은 당연히 억제 됩니다. 잠 올까요? 뛰다 졸면 큰일납니다. 잠 절대 안 옵니다. 이게 바로 교감신경의 작용입니다.

 

교감신경의 작용을 이해하였다면 부교감 신경을 파악하는 일은 훨씬 쉽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불곰에게 도망쳐 살아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제 온몸의 긴장이 풀리겠지요. 우리 몸은 그런 긴장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배가 고파오고(소화관 운동의 촉진), 심장박동도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잠도 다시 자야지요. 이렇게 흥분된 우리 몸을 다시 이완 시켜주는 것이 바로 부교감 신경의 작용입니다.

 

이처럼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상호 작용으로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조절하게 됩니다. 흥분해서 교감신경이 자극되더라도 곧바로 부교감신경이 작동해서 교감신경의 흥분을 낮추어 주는 것이지요. 낮에 화나는 일이 있어도 밤에 잠을 잘 수 있는 이유 입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면 어느 순간 이 교감신경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부교감 신경으로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잠이 오지 않고,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변비가 올 수도, 설사가 계속 될 수도 있습니다. 정서적으로는 화가 자주 나게 되고 그 화를 참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굴로 열이 쉽게 달아 오르고, 피부문제가 생기기 쉽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토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렇게 교감신경이 극도로 항진되면 한의학에서는 ‘황련’이라는 약재를 쓰게 됩니다. 쓰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어 중국에서는 ‘인생이 황련처럼 쓰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 약재입니다. 그러나 효과는 아주 탁월하여 스트레스가 많고 화날 일이 많은 현대인에게는 아주 쓰임이 많습니다. 흥이 많고 감정에 충실한 한국 사람의 정서상 교감신경이 폭주할 일이 많아서 타민족 환자들 보다는 한국 환자분들에게 훨씬 자주 쓰고 있습니다.

 

똑같이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있는 환자라 할지라도 결합하는 증상에 따라 유형을 나누어 치료를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잠이 안 오는데 추위를 많이 타고 소화가 잘 안 되는 환자에게는 계지, 인삼을 황련과 함께 처방하여 치료하게 됩니다. 불면과 변비가 함께 있는 환자에게는 대황을, 설사를 동반하는 환자에게는 반하와 생강을 넣어줍니다. 유난히 가슴이 막히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환자에게는 황련, 반하, 과루실을 처방하게 되는 것이지요.

 

요즘 한국에서 들려오는 정치 소식에 부끄럽고 화가 난다는 주변 분들이 많습니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다 보면 황련 파우더를 한 스푼씩 퍼 먹으며 읽어야 할 만큼 어이가 없는 경우가 매일매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 흘려 가며 이룩한 민주주의가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는가 한탄하게 됩니다. 하지만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들마저 거리로 뛰어나오게 만드는 이 분노가 종국에는 보다 정의로운 한국사회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리라 믿어 봅니다.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는 여고생의 외침이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는 겨우 시작일뿐이다’라고 바뀌어 들려 옵니다. 숱한 불면의 밤들이 황련으로 잘 치료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상처 입은 민주주의도 우리의 촛불과 참여로 다시 그 푸르름을 되찾기를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