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치료하는 한의사

나병진 원장의 한의학 이야기

 

가슴이 너무 답답합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가슴이 너무너무 답답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힘들다고 하는데 목소리가 높지도 않고 말이 많지도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울증도 심하고 잠도 잘 못 잔다고 합니다. 얼굴에 열이 불쑥 불쑥 달아오를 때가 많고 별로 먹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머리가 자주 아프고 어지러워 공부하기 힘들 때가 많다고 하네요.

 

가슴이 답답하다는 증상은 불면,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겪고 있는 신경정신과 환자들에게는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가슴을 주먹으로 쳐서 풀고 싶을 만큼 답답합니다. 약하게 나타나는 경우로 한숨을 자주 쉬는 것도 가슴이 답답한 증상 중의 하나로 여기기도 합니다. 주로 혈액 혹은 림프의 흉부 순환이 정체되어 나타나는 증상인데 이 증상의 유무가 신경정신과 질환을 구분해 내는 지표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임상에서 환자분들이 표현하는 방식은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번잡하다. 심란하면서 가슴이 그득하게 답답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가슴이 막힌 듯 숨이 딱 막힌다. 가슴에서 열불이 나면서 화끈거린다. 가슴에서 덩어리가 맺힌 듯 하다. 가슴에서 뭐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다.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다. 숨이 깊이 들여 쉬어지지 않고 숨이 차다. 등등의 표현을 다양하게 내어 놓습니다. 우리는 흔히 ‘한이 맺힌다’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그럼 한이 어디에 맺힙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주저 없이 ‘가슴에’ 맺힌다고 답할 것입니다. 수많은 심리적 증상은 결국에는 신체적 증상으로 발현되는데 그 장소는 대부분 가슴이 됩니다.

 

가슴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환자는 또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서 치료를 하게 됩니다. 크게는 분노의 감정과 함께 오는지 아니면 우울의 감정과 함께 오는지를 구분해 냅니다. 이 환자는 우울증과 함께 가슴의 답답함을 호소하였는데 이런 경우에는 ‘치자’와 ‘지실’이라는 약재를 써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자는 색깔이 곱고 예뻐서 천연 색소로 옷감을 물들이거나 전을 부칠 때도 사용하는 약재인데 혈관의 울혈과 충혈을 완화시켜 주고 또한 담즙 분비를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지실은 심근을 수축시키고 심박출력을 증진시켜 흉부에서의 순환을 촉진시킵니다.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시켜 소화를 돕기도 합니다. 특히 지실의 함유성분 중의 시네프린은 항우울 작용이 강해 현재 새로운 항우울제로 연구 개발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실은 우울감이 심하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환자에게는 거짓말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이 환자도 지실과 치자가 주요 약재로 포함되어 있는 한약을 먹고 불과 며칠 사이에 많은 증상들이 호전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신체적 증상은 어떠한 원인에 의한 심리적 증상에 기인합니다. 이 환자도 오랫동안 지속된 부모님의 불화가 그 근본 원인이었기 때문에 그 후로도 상당기간 한약을 계속 복용을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증상군을 ‘화병’이라고 부릅니다. 억울함과 분함의 감정이 오래도록 풀리지 않고 지속되어 결국은 가슴이 답답해 오고, 열감이 치솟고, 명치가 막힌듯한 느낌이 드는 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한국 여성들에게 특히 많아 미국 정신과 협회에서 Hwabyung으로 정식 등록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임상에서 보니 캐나다 여성들에게도 흔히 발견되곤 합니다. 말로 풀어내지 못하고 감정을 쌓아두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병이 되게 마련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가까운 지인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훨씬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수다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이유입니다.